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콩고 내전 (문단 편집) == 콩고 위기(1960~1965) == Congo Crisis 1960년 [[레오폴드빌 콩고|콩고민주공화국]]이 [[벨기에]]로부터 독립했다. 하지만 독립하자마자 콩고민주공화국은 한때 콩고 독립운동의 3인방이었던 루뭄바와 카사부부, 촘베 간의 갈등이 심각해졌다. 특히 [[파트리스 루뭄바]] 총리와 [[조제프 카사부부]] 대통령의 대립이 극심했고 동남부 카탕가 주 총리 모이스 촘베가 벨기에의 지원 하에서 카탕가국으로 [[독립]]을 선언하였다. [[벨기에군]]은 [[유엔]]에 의해 곧바로 철수했으나 상당수가 [[용병]]으로 남아 촘베의 편을 들어 내전은 끝나지 않았고 [[소련]] 등의 지원을 받던 루뭄바와 [[프랑스]], [[벨기에]]와 [[남아프리카 연방|남아프리카 공화국]] 정권의 지원을 받던 촘베, 그리고 [[미국]]의 지원을 받던 카사부부 간의 삼파전이자 [[대리전]]으로 번졌다. 유엔은 [[다그 함마르셸드]] 사무총장의 지시 아래 창설 이래 처음으로 [[유엔 평화유지군]]을 파병하기로 결의했다. 유엔 평화유지군은 카사부부 대통령을 지원하여 '카탕가국'으로 독립을 선언한 촘베를 진압하기로 결정하였고 그에 따라 모토르 작전이란 공세작전을 입안하여 카탕가 주의 수도 엘리자베스빌을 점거하는 데 성공했다. 하지만 이 와중에 함마르셸드 유엔 사무총장이 탄 [[1961년 은돌라 유엔 DC-6 추락 사고|비행기가 격추]]되어 함마르셸드가 죽는 사태가 벌어졌다. 1961년에는 평화유지군으로 파병했던 [[아일랜드군]] 병력이 자도빌에서 촘베의 부대에게 포위되어서 약 6일 동안 저항했으나 결국 항복하고 이후 협상으로 풀려난 일도 있었다. 이를 소재로 한 '[[자도빌 포위작전]]'이란 제목의 아일랜드 영화가 있다. 전투의 자세한 내용은 [[자도빌 전투]] 문서 참조. 이런 상황에서 군부의 [[모부투 세세 세코]]가 잠정정권을 수립해 카사부부의 묵인 하에 루뭄바를 체포한 뒤 촘베에게 보내서 촘베 휘하의 벨기에 용병단이 처형하게 해 버렸다.[* 어처구니없게도 모부투를 진급시켜 준 사람이 바로 루뭄바였다. 은혜를 원수로 갚은 셈.] 이후 카사부부와 촘베와의 전쟁이 격화되자 모부투는 유엔 평화유지군과 함께 1963년 카탕가의 촘베를 진압했다. 그러나 연합 정권의 극심한 혼란에서 1964년 [[로디지아]]를 거쳐 스페인으로 망명한 촘베가 돌아와 총리가 되어 [[콩고민주공화국]] 전체의 실권을 쥐게 되었다. 한편 파트리스 루뭄바의 측근이었던 피에르 물렐레가 서남부 크윌루 지역에서 루뭄바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내걸면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 반란은 동부로도 크게 확대되어 루뭄바의 동지였던 크리스토프 그벤예가 심바 반란[* [[라이언 킹]]에 나오는 심바와 같은 의미를 가진 것으로 심바는 사자(용맹함을 비유)를 뜻하는 [[스와힐리어]] 단어다.]을 일으켜 동부를 장악했다. 피에르와 그벤예는 소련의 지원을 받고 중국과 손을 잡아 [[마오이즘]]식 [[게릴라]] 전술을 채택했다. 이때 [[쿠바]]의 군사고문단도 왔는데 [[체 게바라]]도 포함되어 있었다. 이들은 공산주의식 게릴라 전술을 반란군에게 가르쳤다. 총리였던 촘베는 심바 반군 진압을 위해 옛 카탕가주 용병까지 불러오고 모부투와 손을 잡았으나 카사부부와의 갈등으로 정국의 혼돈은 나아지지 않았다. 이에 1965년 모부투는 콩고의 안정을 바란 서양 열강의 지원을 얻어 또 쿠데타를 일으키고 카사부부와 촘베를 모두 축출했다. 이후 모부투는 대통령이 되고 촘베는 스페인으로 망명해 반모부투 활동을 전개했다. 크윌루-심바 반군과 콩고 정부군의 전투는 계속됐으나 체 게바라도 실망할 정도의 오합지졸인 반란군은 지도부 사이의 내부 분열이 극심했다. [[중소결렬]]로 중국과 소련의 사이도 나빠져 국제 공산주의 세력의 지원도 줄어들면서 연이어 패퇴해 결국 내전은 정부군의 우세로 접어들어 최대 10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 일단락되었다.[* 이때 미국은 공산주의 격퇴라는 명분으로 모부투에 대한 [[군수품]]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. 백인 주민이 스탠리빌에 감금되자 벨기에군이 직접 개입해서 심바 반군을 격파하고 미국은 이를 지원했다.][* 이때 궤멸된 동부의 심바 반군의 잔당은 [[로랑 데지레 카빌라]]에게 흡수되어 지속적으로 모부투를 괴롭혔다.] 1967년 촘베를 지지하던 카탕가 주에서 또 반란이 일어났으나 진압되었고 촘베는 궐석재판에서 [[사형]]을 선고받았다. 그는 1967년 프랑스 정보부 [[DGSE]]의 전신인 SDECE에게 납치되어 [[알제리]]로 끌려갔고[* 왜 도와주던 프랑스가 뒤통수를 쳤나면 1967년에 카탕가 주에서 반란이 일어났는데 서방은 미국을 중심으로 이미 모부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. 따라서 콩고의 분열을 바라지 않았던 서방 열강은 반란의 구심점이었던 촘베를 그냥 팽해 버렸다.] 감옥에 갇혔다가 가택연금 상태에서 1969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. 패전 직후 도망갔다가 사면을 약속받고 항복한 피에르 물렐레는 체포되었으며 약속은 휴지조각이 되었고 처형되었다. 크리스토프 그벤예는 [[우간다]]로 도주를 하고 [[우간다]]에서 2015년에 사망했다. 경쟁자가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[[자이르|32년간의 모부투 독재 정권]]이 콩고에 수립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